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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마디(삼매)  

그의 명상 결정에서 사마시의 상태로 몰입하는데,

거기에서 그의 육체와 감각 기능은 마치 잠을 자는 것과 같이 안정을 맛보고,

그의 마음 작용과 이성은 마치 깨어 있는 듯이 성성하나 그는 의식의 선을 넘어섰다.

사마디 상태에 있는 사람은 성 성적 (瑆瑆寂寂) 한 경지에 있다.

 사마디는 구도자의 최종 목적지이다.

 

모든 것의 창조주는 브라만이다. 요구 구도자는 조용히 이 브라만을 숭배한다.

신이 자기가 태어난 근원으로서 그 속에서 호흡하고 다시 그곳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마음속의 혼은 아주 작은 종자보다 작으나 모든 행동과 바람을 포함하고 있으며 하늘보다도 더 큰 것이다.

구도자는 이와 같은 마음속으로 들어가는 것으로 몸과 마음과 지성의 활동은 아주 잘 자는 상태와 같이 깊이 정지하고 있어서 '나' 또는 '나의 것'이라고 하는 감각도 없는 상태이다.

 

구도자는 진정한 요가를 이루었다. 그에게는 말할 수 없는 기쁨과 성적 적함이 있을 뿐이다.

모든 것을 이해한 평화가 있다.

마음은 이 상태를 묘사할 글을 찾지 못했고, 입은 이 상태를 나타낼 말을 잃었다.

사마디의 경험과 다른 경험을 비교하는 데 있어서,

현인들은 이렇게 말한다.


 "네티 Neti! 네티 Neti! (이게 아니야! 이게 아니야!)"


하여튼 그 상태는 심오한 침묵으로써만 그 표현이 될 수 있다.

요기는 물질세계에서 벗어나 영원의 세계로 빠져든 것이다.

 

알려고 한 자와 그 대상감에는 마치 장뇌와 불꽃이 하나가 된 것처럼 그 둘도 일체가 되는 것이다. 

요기의 가슴 더 깊숙한 곳으로부터 상나라 차라 아가 부르는 영혼의 노래 '아트마 사 트 캄 Atma Satkam'이 올려 나온다.

 

 

영혼의 노래 (Songs of the Soul)

나는 자아도 이성도 아니며, 마음도 생각도 아니냐니,
나를 들을 수도, 말속에서 찾을 수도, 냄새로도 눈으로도 잡지 못하리,
빛 속에서도 바람 속에서도 나를 찾을 수 없으니, 땅과 하늘 안에서도 나를 찾지 못하리라.
의식과 기쁨의 화신, 나는 그지없는 행복의 더없는 기쁨이어라,

나의 이름도 생명도 없다니, 나는 생명의 공기도 들이마실 수 없어라.
어떤 물질로도 나를 만들 수 없고, 내 형상은 나의 진정한 쉼터가 아니냐니
말도, 손도, 발도 없고 또한 진화(進化)도 없다니 -
나는 의식과 기쁨이며, 용융 속에서의 더없는 행복이어라.

나는 미움과 열망을 벗어 버렸냐니, 나는 미혹과 탐욕을 정복했노라.
저만은 나를 애무하지 못하기에, 시기심은 결코 싹트지 못하나니
모든 믿음도, 지나간 부도, 자유도, 욕망도 벗어 버렸음에 -
나는 의식과 기쁨이며 더없는 행복이 나의 옷 매 무 새 가 나니.

덕(德)과 부덕(不德), 즐거움과 고통도,
성스러운 말씀도, 공양물도, 기원도, 순례도, 나의 유산이 아니냐니
나는 먹거리도, 먹는 일도, 먹는 이는 더욱이 아니냐니 -
의식과 기쁨의 화신, 나는 그지없는 행복의 더없는 기쁨이어라.

죽음에의 두려움도, 인종의 차이로도 나를 나누지는 못하리라,
나를 '내 아이'라고 부를 부모도 없음에,
윤회의 속박도 결코 나를 묶지 못하리니
나는 제자도 스승도 아니며, 내겐 친지도 친구도 없으니 -
의식과 기쁨이 나이며, 더없이 기쁨 속에 젖는 것이 오직 바람일지라.

아는 것도, 앎도, 알려고 하는 자도 나는 아니냐니, 형제가 없음이 바로 나는 형체요,
나는 감각 속에 머무는 그것들이 내 쉼터는 아니냐니

언제나 청정한 평형임에, 자유도 얽매임도 나는 아니냐니 -
나는 의식과 기쁨임에, 더없는 기쁨 속에서 나를 버리라, 찾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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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아나(명상)

 물이 그 용기에 따라 형태가 정해지는 것처럼,

사물을 깊이 생각할 때의 마음은 그 사물의 형태로 변형된다.

마음 또한 숭배하는 심성으로 항상 헌신적인 성스러운 것을 향해 일념으로 생각하다 보면 바로 그 성체(聖杕)와 똑같게 성화(聖化) 되는 것이다.

 

 

  기름이 한 용기에서 다른 용기로 옮겨질 때, 우리는 꾸준하고 안정적인 흐름을 보게 된다. 집중이라는 흐름이 방해받지 않을 때, 일어나는 상태가 다 아니(dhyana. 전기의 흐름을 방해받지 않을 때 전구의 필라멘트가 달구어져 밝아지는 것처럼, 요기의 마음 역시 디아나에 의해 밝아진다.

 

 

  그의 육체, 호흡, 감각 기능, 마음, 이성, 자아는 그의 명상에 대상 - 우주정신-에 모두 통합된다. 이때 그는 모든 것을 초월한 경지의 의식 상태가 된다. 지고의 행복 Supreme bis 이외의 어떤 감정도 없다. 전광석화같이, 요기는 지상과 천상을 넘어서 빛나고 있는 광휘 LIGHT를 본다. 그는 그 자신과 다른 사람들에게 빛이 된다.

 


 요가의 길에서 진전의 표시는 건강, 육체적 민첩함, 안정감, 용모의 깨끗함, 아름다운 누 목소리, 몸에서 풍기는 향기, 갈망으로부터 자유로움 등이다. 그는 안정되고 고요하고 평정한 마음을 갖는다. 그는 바로 겸손함의 상징이다. 그는 '절대 신성'에 그의 모든 것을 바치고, 신에게 귀의하고, 그 자신의 카르마(Karma 속박으로부터 벗어나서 지바나 무크 타 (jivana Mukta, 해방된 영혼)이 된다.

 


  "요가의 경지에 도달하려고 애를 썼으나 이루지 못한 사람, 또 신념은 갖고 있으나 그의 마음이 요가로부터 벗어나 방황하는 사람, 이러한 사람들은 어찌 되는 것입니까?"

 

 


  아르주나의 이 질문에 대해, 크리슈나는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정의로운 이에게는 어떤 악의 무리도 닥치지 않는다. 선을 행했던 사람은 오랫동안 천상에 살다가 다시 훌륭하고 순수한 집안에 태어난다. 어쩌면 깨달은 요기의 집안에 태어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런 가정에 태어난다는 것은 이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이라고 할 수 있다. 그는 전생에서 획득했던 지혜를 다시 얻을 것이고, 완벽한 성취를 위해 끊임없이 노력할 것이다. 쉬지 않고 계속한 전생의 수행, 노력, 탐구로 인해 요기는 죄악으로부터 밝혀진 영혼을 갖고, 또 수많은 생을 통해 완벽함을 이루고 마침내는 지고의 목표, 해탈에 이르는 것이다. 요기는 금욕, 지식, 봉사의 길을 따르기만 하는 사람들보다 높은 차원을 경험한다. 그러므로 아르 쥬나, 너는 요기가 되어라. 요기 가운데에서 가장 위대한 요기는 신심으로나 Me을 숭배하고, 내 Me 안에 그 마음이 머무는 자이다."

 

 

 

 

  물이 그 용기에 따라 형태가 정해지는 것처럼, 사물을 깊이 생각할 때의 마음은 그 사물의 형태로 변형된다. 마음 또한 숭배하는 심성으로 항상 헌신적인 성스러운 것을 향해 일념으로 생각하다 보면 바로 그 성체(聖杕)와 똑같게 성화(聖化) 되는 것이다.

 

 


  기름이 한 용기에서 다른 용기로 옮겨질 때, 우리는 꾸준하고 안정적인 흐름을 보게 된다. 집중이라는 흐름이 방해받지 않을 때, 일어나는 상태가 다 아니(dhyana. 전기의 흐름을 방해받지 않을 때 전구의 필라멘트가 달구어져 밝아지는 것처럼, 요기의 마음 역시 디아나에 의해 밝아진다.

 

  그의 육체, 호흡, 감각 기능, 마음, 이성, 자아는 그의 명상에 대상 - 우주정신-에 모두 통합된다. 이때 그는 모든 것을 초월한 경지의 의식 상태가 된다. 지고의 행복 Supreme bis 이외의 어떤 감정도 없다. 전광석화같이, 요기는 지상과 천상을 넘어서 빛나고 있는 광휘 LIGHT를 본다. 그는 그 자신과 다른 사람들에게 빛이 된다.

 요가의 길에서 진전의 표시는 건강, 육체적 민첩함, 안정감, 용모의 깨끗함, 아름다운 누 목소리, 몸에서 풍기는 향기, 갈망으로부터 자유로움 등이다. 그는 안정되고 고요하고 평정한 마음을 갖는다. 그는 바로 겸손함의 상징이다.

 

그는 '절대 신성'에 그의 모든 것을 바치고, 신에게 귀의하고, 그 자신의 카르마(Karma 속박으로부터 벗어나서 지바나 무크 타 (jivana Mukta, 해방된 영혼)이 된다.

 

 

  "요가의 경지에 도달하려고 애를 썼으나 이루지 못한 사람, 또 신념은 갖고 있으나 그의 마음이 요가로부터 벗어나 방황하는 사람, 이러한 사람들은 어찌 되는 것입니까?"

 

 

 

 

  아르주나의 이 질문에 대해, 크리슈나는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정의로운 이에게는 어떤 악의 무리도 닥치지 않는다. 선을 행했던 사람은 오랫동안 천상에 살다가 다시 훌륭하고 순수한 집안에 태어난다. 어쩌면 깨달은 요기의 집안에 태어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런 가정에 태어난다는 것은 이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이라고 할 수 있다. 

 

그는 전생에서 획득했던 지혜를 다시 얻을 것이고, 완벽한 성취를 위해 끊임없이 노력할 것이다. 쉬지 않고 계속한 전생의 수행, 노력, 탐구로 인해 요기는 죄악으로부터 밝혀진 영혼을 갖고, 또 수많은 생을 통해 완벽함을 이루고 마침내는 지고의 목표, 해탈에 이르는 것이다. 

 

요기는 금욕, 지식, 봉사의 길을 따르기만 하는 사람들보다 높은 차원을 경험한다. 그러므로 아르 쥬나, 너는 요기가 되어라. 요기 가운데에서 가장 위대한 요기는 신심으로나 Me을 숭배하고, 내 Me 안에 그 마음이 머무는 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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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라나(집중 통일 해법)

육체가 아사나 Asana에 의해서 단련되고,

마음은 푸라나 야마 pranayama로 가다듬어지고, 모든 감각 기능이 프 라 티 아 하 라 pratyahara의 통제 아래 있게 될 때, 구도자는 다라나 Dharana라고 불리는 여섯 번째 단계에 도달하게 된다.

이 상태에서 그는 한 가지 일이나 자기가 열중하고 있는 일에 완전히 집중하게 된다.

이때 마음은 완전한 몰아의 경지를 맛보기 위해 안정되어야 한다. 마음은 외부 세계로부터의 생각과 자신의 내부에서 일어나는 생각들을 분류하고, 판단하고, 조화시키는 도구이다.

 

  마음이란 미묘하고 변덕스러운, 그래서 억제하기 무척이나 힘든 여러 가지 생각들로 되어 있다. 통제된 마음에 의해 잘 보호된 생각은 행복을 가져다준다. 도구에서 최고의 효과를 얻기 위해선, 그것의 작동 방법을 알아야 한다는 것은 당연하다. 마음은 사고를 위한 도구임에 그것이 어떻게 작용하는가를 아는 것이 필요하다.


정신적인 상태는 다섯 군으로 나뉜다. 이들 중 첫 번째가 크 십 타 Ksipta 상태인데, 여기에서 정신이 분산되고, 혼란스럽고, 부주의하게 된다. 이 상태에서 마음은 대상을 좇고 구나 rag-guan이 지배하게 된다.


 두 번째가 중요한 십타viksipta 상태로, 마음은 동요되고, 갈피를 못 잡게 된다. 이 단계에서는, 자기의 노력에 대한 결과를 즐길 능력은 주어지나, 욕망이 정돈되고 조절이 되지 않는다.
그다음은 마음이 어리석고, 활기 없고, 무지한 무다 mud ha 상태가 온다. 그것은 혼란스럽고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게 되며 타며 구나 TMAO-guan이 지배한다.

 

  네 번째 단계는 에 카드로(e agar, e ka=하나, agar=가장 중요한) 상태인데, 여기에서는 삼성 직무적성검사 바 구나 sattva-guan이 우세하고 마음이 확실히 집중되고, 정신력은 한 가지 목표만을 생각하고, 오직 하나에만 집중되어 있다.
어떻게 하라 상태의 사람은 뛰어난 지적 능력을 소지하고 그가 무엇을 원하는지 정확히 알기 때문에 그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오롯하게 힘을 쏟는다. 그러나 때로는 다른 사람의 희생은 상관하지 않고, 그 욕망만을 위한 무자비한 추구가 큰 불행을 가져올 수 있고, 설사 그 욕망이 달성되더라도 심한 후유증을 남길 수도 있다.


  서사시 마하바라타 Mahabharata의 힘센 궁술 가인 아파 쥬나 Arjuna는 우리에게 다라나 dhauana가 의미하고자 하는 것의 좋은 본보기가 되고 있다. 그 옛날, 왕자들의 스승은 드러나 Drona가 그들의 실력을 평가하기 위해서 궁술 대회를 열었다. 드러나는 왕자들에게 차례로 과녁을 보여 준 후 그것이 무엇인가를 설명하게 했다. 그 과녁은 다름 아닌 둥지를 튼 새였다.


  어떤 왕자들은 나무숲이라고 하고, 어떤 이들은 둥지가 있는 가지이거나 특수한 나무라고 했다. 아르주나의 차례가 왔을 때, 그는 처음으로 그새를 묘사했다. 그러고 나서 그는 새의 머리만을 보았고, 결국에는 새의 반짝이는 눈을 볼 수 있었는데, 바로 그것이 그러나 가 택한 과녁의 중심인 것이었다.


  하지만, 지나치게 자기 본유적으로 어떻게 하라 상태의 사람에게는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이 상태에서 감각 기능은 조절되지 않은 채 방황하게 되고 마음이 그 길을 그대로 따라가게 된다. 그것들은 폭풍우 속에서 난파한 배처럼 그를 내버려 둘 수밖에 없고, 사람의 판단을 흐리게 한다. 배는 기울어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바닥에 짐을 깔아야 하며, 키잡이는 배를 잘 인도할 별이 있어야 한다.


어떻게 하라 상태에 있는 사람은 박이(bhakti, 신에 대한 숭배)와 바른 방향으로나마 나아갈 수 있도록 마음의 평정을 지키기 위하여 신성에 대한 집중이 필요하다. 그는 '나'와 '나의 것'이라는 감정, 즉 아상(我相)이 소멸할 때 진정한 행복을 느낄 것이다.


 마지막 정신적 단계는 니루다niruddha의 상태로, 마음 manas, 지성 buddhi, 자아 ahamkara는 모두 억제되고, 이 모든 능력이 신(성)의 필요와 '절대 신성'을 위해 바쳐진다. 여기서는 '나'와 '나의 것'에 대한 인식이 없다. 마치 강렬한 빛이 렌즈에 쏟아지면 모든 것은 하나의 빛이 되어 버린 것 같아 구별할 수 없듯, 자신의 마음과 지성, 자아를 신에게 의탁해 버린 구도자는 오직 사상(思性)의 창시자인 '절대 신성'만을 생각하기 때문에 '절대 신성'과 하나가 된다.

 

 

  에마 그라 타다 Agata 상태나 집중이 없다면, 인간은 아무것도 이룰 수 없다. 우주를 형성하고 지배하는 신성에 대한 집중 없이는 구도자는 자신의 내부에 있는 신성(神性)을 열 수가 없으며 우주적인 사람이 될 수가 없다. 이런 집중력을 얻기 위해서 권장되는 것은 에마 타트라 아비 야사 kea-tattva abhyasa 혹은 모든 곳에 편재하며 그 깊숙한 곳에 자리한 '절대 자아'로서 그 단일 형체를 다양하게 변환시키기도 하는 원질(原質)에 대한 탐구이다. 그러므로 구도자는 신의 상징인 AUM(옴)에 집중하게 되고, 에카크라타에 이르게 된다.

 

  옴 AUM : 비노바 바베 Sri Vinoba Have에 따르면, 라틴어 Omen과 산스크리트어 AUM 은 둘 다 같은 의미를 가진 어원에서 유래되었고, 두 단어는 전지, 편재, 전능의 개념들을 의미한다. AUM의 또 다른 말 프라나브 pranava는 '찬미한다'는 의미를 지닌 어원 '누 new'에서 나온 것에 우월성을 의미하는 '파라 RPA'가 더해진 것이다. 그러므로 그 단어는 '최고의 찬미' 또는 '최고의 숭배자'를 의미한다.
  AUM 은 세 음절로 구성되어 있는데, 즉 A, U, M의 세 글자이고, 쓸 때는 초승달과 점 표시를 글자 위에 한다. 그 의미를 전달하기 위해서 여기에서는 다양한 해석 가운데 몇 가지의 예만을 설명하기로 한다.

 


 그들은 세 가지의 성인 남성, 여성, 중성을 가리키고, 그 전체적 의미를 창조주와 함께 모든 창조물을 나타낸다. 그들은 세 가지의 구나 guans, 즉 삼성 직무적성검사 바 sattva, 로저스 rah as, 토마스 Tamas의 특징을 나타내고, 전체적으로는 구나 치타 gunatta를 가리키고, 이 구나 티 타는구나! guan의 영향력으로부터 훨씬 넘어서 초월해 있는 사람을 말한다.


그들은 세 가지 시제 즉 과거, 현재, 미래를 나타내며, 그 전체적인 의미를 시간의 한계를 초월한 창조주를 나타낸다. 그들은 또한 각각 어머니, 아버지, 영적 스승이 분담하고 있는 가르침의 몱을 가리킨다. 그 전체적인 의미는 브라마 디뎌야 Brahma Vidya 즉 자아에 대한 지식을 나타내고, 그 가르침은 불변이다.


  A, U, M은 요기 수행의 세 단계, 즉 아사나 Asana, 푸라나 야마 prana ya-ma, 프라티아하라pratyahara를 가리킨다. 그 전체적인 의미는 세 단계를 발판으로 하여 도달하는 사마디 samadhi를 나타낸다. 그들은 세 신, 즉 브라마 (Brahma, 창조자), 비슈누(Visnu, 수호자), 시바(Siva, 우주의 파괴자)를 나타낸다. 이들의 전체적인 의미는 우주가 생성되고, 성장하고, 열매 맺고, 궁극적으로는 근본으로 돌아가는 원전인 브라만 Brahman을 나타낸다.


그것은 자라거나 변하지 않는다. 많은 것들이 변하고 지나가지만, 브라만은 절대 변하지 않는 유일한 것이다. 글자 A, U, M은 또한 그 자신의 내부에 있는 신성의 실현, 즉 만트라 'Tat TWA ASI(그것이 당신이다)'를 나타낸다. 그 전체적 의미는 인간의 육체, 마음, 지성과 자아의 속박으로부터 영혼이 해방되는 것을 가리킨다.


  요기는 AUM 의 중요성을 충분히 인식한 후에, '절대 신성'의 이름에 옴 AUM을 더함으로써 그의 주의를 신성 Deity에 집중시킨다. AUM 말 자체가 너무 광대하고 추상적이기 때문에, 신의 이름에 초점을 두고 그 위에 지극한 신심으로 AUM을 더함으로써 그의 감각, 의지, 지성, 마음, 이성을 하나로 만들고, 그리하여 만트라의 느낌과 의미를 경험하게 된다.


  요기는 「문 다카 우파니샤드 Mundakoanisad」의 한 소절을 떠올린다. "우파니샤드의 위대한 무기를 활로 보고, 우리는 명상으로 날카로워진 화살을 활시위에 얹어야 한다. 구도자여, 그 진수를 향해서 생각을 오롯하게 하여 그 불멸의 것을 표적으로 삼아 그것을 관통하라. 신비한 음절 AUM 은 활이다. 그리고 화살은 자아 Atm이다. 브라만은 과녁이다. 마음이 흐트러지지 않은 사람은 그 표적을 관통시킨다. 화살이 표적 안에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 역시 브라만 안에서 존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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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치아하라

 사람의 이성이 감가가 기능에 굴복하게 되면 그 자신은 자기 상실의 상태가 된다.

반면에, 호흡조절이 바르게 이루어진다면, 욕망을 외부적인 목표를 따르기보다는 감각 기능들이 내면으로 향하게 되고, 인간은 그것들의 압박에서 벗어나게 된다.

이것이 요가의 다섯 번째 단계 즉 프 라 타 아 하 라 pratyahara라고 부르며, 이 단계에서 모든 감각 기능은 제어된다.


  이 단계에 도달하면, 구도자는 자기 자신을 찾는 경험을 하게 된다. 매력적이지만 치명적인 관능적 욕망의 마력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그러한 욕망을 만들어낸 창조주를 자기 몸속에 새김으로써 욕망에 대한 절연물이 되게 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는 또한 신의 유산인 지식의 등불도 필요하다. 비닐로, 마음이라는 것은 인간에게 있어서 속박의 원인도 될 수 있고 해방의 원인도 될 수 있다. 만약 그것이 욕망의 굴레에 묶여 있다면 속박이 되고, 거기에서 벗어나 있다면 우리는 자유를 맛볼 것이다.

 

  마음이 무엇인가를 갈망하고, 슬퍼하고, 어떤 것에 대해 불쾌해한다면 거기에는 속박이 따른다. 요기는 쾌락보다는 선을 선호한다. 그들의 욕망을 따르는 사람들은 선보다 오히려 쾌락을 추구하여 인생의 가장 중요한 목표를 놓치게 된다. 요기는 현재의 그 상태에서 기쁨을 느낀다. 그는 언제, 어떻게 멈추어야 하는지를 알기에 평온 속에서 사는 것이다. 처음에 그는 쓰디쓴 것을 택하나 중국에는 그것이 꿀처럼 달게 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으므로 수행으로 그 쓴맛을 참고 견디게 된다. 그들의 욕망에 사로잡힌 자들은 처음에는 꿀처럼 달아 보이는 것을 택하나 종국에는 독약처럼 쓰게 된다는 것을 모른다.


  요기는 세속적인 욕망으로 감각을 만족시키는 길은 넓지만, 그것은 결국 파멸로 인도되면, 그 길을 따르는 사람들이 많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요가의 길은 날카로운 면도날처럼 좁고, 밟고 지나가기가 여간 어렵지 않을 뿐에 그 길을 찾을 수 있는 이가 거의 드물다. 요기는 파멸로 이르는 길도, 구원의 길도 마음속에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힌두 철학에 의하면 의식은 세 가지의 다른 특성을 명시하고 있다. 사람에게 있어서, 그이 생명과 의식은 우주 전체와 함께 하나의 힘이며 동일한 프라크리트(prakri, 우주적인 물질 : Sattva, Rajas, Tamas의 세 가지 특성으로 이루어진 물질세계의 본바탕)이다.

 

구나(gynas, 특성, 속성) 들 중에서 우세한 경향에 따라 그 명칭이 달라진다. 이들 구나(특성 혹은 속성) 들은 다음과 같다.
  (1) 삼성 직무적성검사 바 (Sattva, 밝고 순수하고 선한 특성)은 명료함과 정신적 평정에 이르게 한다.
  (2) 로저스 (Rahas, 이동성과 활동적인 특성)은 개인을 적극적이고 활기차고 긴장하고, 의지적으로 한다.
  (3) 토마스 (Tamas, 어둡고 방해가 되는 특성)은 라자스탄의 작용과 사트마가 나타나는 것을 저지하고 반대로 작용하게 한다.

 

 


  타 화성 Tamas는 미혹, 불분명, 비활동적, 무지의 특성을 지니고 있다. 이런 다마스의 성질이 우세한 사람은 생기고 없고, 무감각한 상태에 빠져 있다. 사트마가 신성에 이르는 길이라 하면 토마스는 악성에 이르는 길이고, 양자 사이에 라자르가 있다. 각 개인이 가지는 신념, 취하는 음식, 행하는 헌신 행위들, 겪은 내핍 생활, 부여받은 재능은 그에 내재하는 삼성 직무적성검사 바, 로저스, 토마스 중 우세한 요인에 의해 변한다.


  신성한 쪽을 향하는 경향을 타고난 사람은 두려움이 없고 순수하다. 그는 관용다우며 자기 통제가 되는 사람이다. 그는 자아에 대한 탐구를 추구하며 비폭력적이고, 신심이 깊고, 성내지 않는다. 그는 노력에 대한 결과를 바라지 않고, 일 자체를 위해 일한다. 그는 갈망이 없으므로 그 누구에게도 악의를 품지 않고 모든 이웃을 향해 열린 자비로움으로 마음의 평정을 갖는다. 그는 온화하고 겸손하며 성실하다. 그리고 의식이 깨어 있으며, 관대하고, 결연하고, 불신과 자만으로부터 해방된 사람이다.

 

 악한 경향을 타고난 사람은 잘 속이고, 거만하며, 자만에 빠져 있다. 그는 노여움, 잔인함, 무지로 가득 차 있다. 그런 사람들에게는 순수함, 정의로움, 진실을 찾아볼 수 없다. 그들은 한없는 욕망과 욕구를 채우려고만 한다. 무수한 욕망으로 어지러워진 상태에서, 망상의 늪에 빠지고, 감각적 쾌락의 탐닉은 그를 지옥에 이르게 한다.

 

 라도 구냐(rah-guan 성질이 우세한 사람은 갈망이 강하고 애정도 깊은 사람이다. 그는 정열적이며 탐욕적이어서 다른 사람을 해칠 수도 있다. 욕정, 증오, 시기와 속임으로 가득하기 때문에, 그의 욕망은 그칠 줄을 모른다. 그는 야심이 있고, 성취욕이 강할 뿐 아니라, 불안정하고, 변덕이 심하며, 쉽게 음이 산란해진다. 그는 친구의 도움을 구하기도 하고 가족에 대한 자부심도 있다. 그는 불쾌한 일에는 몸을 움츠리고 유쾌한 것에만 매달린다. 그의 말에는 정이 없으며, 식탐이 많다.


 각각의 다른 구나 guan이 우세하게 지배하는 사람들의 마음 작용은 '탐내지 말라'와 같은 보편적인 계율에 대한 그들 나름대로 접근 방법에 따라 달리 설명될 것이다.


  탈모 구나 TMAO-gum이 우세한 사람은 이렇게 해석할 것이다. "다른 사람들은 내가 어떻게 얻었든 간에 내 것은 탐하지 마라. 만약 내 것을 탐한다면 그들을 파멸시킬 것이다."


  라도 구나 raj-guan이 우세한 사람의 성격은 그 계율을 "남들이 나의 것을 탐하지 않는 한 나도 남의 것을 탐하지 않는다."라고 해석하는 이기적인 사람이다. 그는 문자 그대로 수단으로써의 법을 지킬 것이지만, 원리의 문제에 입각한 법의 진정한 정신은 따르지 않는 셈이다.


  사트비카sattvika 기질을 갖춘 사람은 수단으로써가 아니라 영원한 가치로서 원리를 중시한 법의 글자 자체의 뜻과 가르침의 정신 둘 다 지킬 것이다. 그는 정의 그 자체를 위해서 정의로운 것이지 정직하도록 강제하는 법의 처벌 때문이 아니다.


  요기 또한 인간이므로 상술한 세 가지 구나에 영향을 받는다. 자기가 추구하는 대상물 및 자기 자신에 대한 '끊임없는 수행(abhyasa)'을 통해서 어떤 사상, 말, 행위들이 토마스 혹은 라자르에 어떻게 영향받는지를 배우는 것이다. 끊임없는 노력으로 타 화성 Tamas에 의해 고무된 그러한 생각들을 제거해 버리고 그는 사 트 비 카 sattvika의 마음을 얻기 위해서 노력한다. 삼성 직무적성검사 바 구나 sattva-guan만이 남게 되었을 때, 인간의 영혼은 드디어 궁극적인 목적을 향해 크게 다가서게 되는 것이다.


  중력처럼 구나들 역시 끌어당기는 힘이 있다. 우주에서 무중력 상태를 경험하기 위해 집중적인 연구와 엄격한 훈련이 필요하듯이 구도자는 구나 guan의 끌어당김으로부터 자유로워졌을 때 신성과의 합일을 경험하기 위해서는 요가를 통한 훈련과 자기 성찰의 구도적 수행이 필요하다.


  일단 구도자가 신성 또는 창조의 완벽함을 경험하게 되면 감각 기능의 대상들에 대한 갈망 (갈아)는 사라지고 그 후부터는 그것들을 '욕망 없는 냉정한 마음 (vairagya)' 이로 바라보게 된다. 그는 더위와 추위, 고통과 기쁨, 명예와 수치, 덕(德)과 부덕(不德)에 있어서 동요가 없게 된다. 승리와 불행 이 두 가지를 평정한 마음으로 대한다.


  그는 이 두 개의 상반된 것들에서 자기 자신을 해방했다. 그는 이제 구나 들의 끌어당김을 넘어서서 구나 티 타(gunatita 된 것이다. 그제야 그는 생사와 고통과 비애의 틀에서 해방되어 불멸한 생명이 된다. 대우주 정신(혼)과 일체가 됨으로써 신의 완성함을 경험했기 때문에 이것이 내 속에 있다는 것을 주장하지 않는다. 그 어떤 것도 겸허하게 받아들이는 그런 사람은 모든 것을 완전에 이르는 길로 인도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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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가란 단어가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 것처럼, 프라다 역시 상당히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다

프라다 prana는 숨, 호흡, 생명, 활기, 바람, 에너지와 힘을 의미한다.

이것은 또한 육체와 상반되는 개념으로 '영혼'을 의미한다. 푸라나 야마는 보통 복수로 쓰여 활발한 호흡을 가리킨다. 아야 마 Yama는 길이, 확장, 뻗음 또는 제한을 의미한다. 이 조절은 호흡의 모든 기능에 의한 것이다.

 

즉,
(1) 프라하 puraka라고 하는 들숨 (숨을 가득 채움)
(2) 레 착하여 rechaka라 부르는 날숨 (폐를 비움)
(3) 쿰바카 Kumbhaka라 부르는 들숨이나 날숨이 없는 지식 (숨 멈춤) 상태이다. 하타 요가 지침서에는 쿰바카는 호흡의 세 가지 과정인 들숨, 날숨 그리고 숨 멈춤을 모두 포함하는 일반적인 의미로 쓰인다.

 

  쿰바 Kumbha는 물 주전자, 물항아리, 단지나 잔을 가리킨다. 물항아리는 공기가 완전히 비워져야만 물로 완전히 채워지고 물을 모두 비워 내야만 공기로 가득 채워질 수 있다. 마찬가지로, 쿰바카에는 두 가지 상태이다.

(1) 충분한 들숨 후 호흡을 멈출 때 (폐가 완전히 생명을 주는 공기로 가득 참)

(2) 충분한 날숨 후 호흡을 멈출 때 (폐에서 독이 있는 공기가 완전히 빠짐)이다.


  이 중 전자는 숨을 완전히 들이마시고 내쉬기 전에 호흡을 멈추는 것으로, 이를 안타라 쿰바카 antara kumbhaka라 이른다. 후자는 숨을 완전히 내쉬고 들이마시기 전에 호흡을 멈추는 것으로, 이를 봐야 쿰바카 bah ya kumghaka라 한다. 안타라는 내부를 뜻하고, 바야는 외부를 뜻한다. 따라서 쿰바카는 '충분한 들숨 후 다음 날숨 사이의 기간 (안타라 쿰바카)' 또는 '충분한 날숨 후 다음 들숨 사이의 기간(바야 쿰바카)을 말한다. 이 두 가지 타입에서, 숨을 멈추고 조절 억제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푸라나 야마는 호흡의 기술이다. 이것은 생명의 바퀴를 돌리는 중심축이다. "사자나 코끼리, 호랑이가 서서히 신중하게 길드는 것처럼, 프라다는 개인의 능력과 신체적인 한계에 따라 서서히 조절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이는 수행자를 죽게 할 수도 있다. "라고 「하타 요가 프라디피카」에서 경고하고 있다. 요기의 생활은 그의 수행 날수록 평가되는 것이 아니라, 그가 호흡한 수로 평가된다. 그러므로 요기는 올바른 방법으로 호흡을 느끼고 깊게 하여야 한다. 이런 호흡은 호흡기를 튼튼히 하고 신경 조직을 안정되게 하고, 갈망을 줄여 준다.


  욕망과 갈망이 감소할 때, 마음은 자유롭게 되고, '집중'하기에 적합한 도구가 되는 것이다. 푸라나 야마를 잘못 행하면, 수행자는 딸꾹질, 고창증, 천식, 기침, 콧물, 머리·눈·귀의 통증, 신경계통이 흥분되는 것을 경험하게 된다. 숨을 느리고, 깊고, 안정되고, 바르게 들이쉬고 내쉬는 것을 배우는 데는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다. 쿰바카(숨 멈춤)를 시도하기에 앞서 이것을 먼저 완전히 체득해야 한다. 장작의 겉에 쌓여 있는 재가 바람에 의해 날아갈 때 불길이 더 세고 밝게 타오르듯이, 육체 내에 들어 있는 신성의 불은 욕망이라고 하는 잿더미가 프라나야마의 수행으로 떨어져 나갈 때 장엄하게 빛난다.

  "마음에서 망상을 몰아내는 것이 진정한 레 착하여서(날숨)이다. '내가 즉 아트마 (영혼)이다'라는 인식이 진정한 후라나 (들숨)이다. 이러한 믿음을 가진 마음의 지속이 진정한 쿰바카 (숨 멈춤)이다. 이것이 진정한 의미의 푸라나 야마"라고 상나라 차리라 Sankaracharya는 말한다.


  모든 생물체는 무의식적인 들숨을 통해 '고함 ['So ham', Ash=Ha (그), Aha=I(나), 즉 그(불멸의 영혼)는 나다]'이라는 기도를 들이마시며 또한 날숨에서 '감사['Hamah', I am He 즉 나는 그다.]'라는 기도를 내쉬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아자 파 만트라 (aha pa-mantra, 무의식적으로 반복되는 기도)인데, 이는 생명체가 살아 있는 한 영원히 계속될 것이다. 요기는 이 아자 파 만트라의 중요성을 충분히 깨닫고, 그렇게 함으로써 그의 영혼을 구속하는 족쇄에서 풀려나는 것이다. 그는 자신의 존재를 위한 호흡을 '절대 신성'에 공양물로 바친 대가로 '절대 신성'으로부터 가피로서 생명의 호흡을 받게 된다.

 

  개인 jivatma의 신체 내의 프라다는 우주정신 paramatma의 질서 정연한 호흡의 한 부분이다. 이는 프라다야 마의 수행으로 개인의 호흡 '판다 프라다 Pina-prana'와 우주의 호흡 '브라마다 프라다 Brahmana-prana'의 조화를 이루려는 것이다.


  17세기의 신비주의자인 카리브엔 Kariba Edden은, "만일 당신이 고요한 영혼을 갖고자 한다면, 먼저 호흡을 조절하라, 호흡이 잘 조절되면, 마음은 평온해질 것이다. 호흡이 불규칙하다면 항상 걱정 근심으로 불안할 것이다. 그러므로 어떤 것을 시도하기에 앞서, 당신의 기질을 부드럽게 하고, 당신이 영혼을 잔잔하게 가라앉히는 호흡을 조절하라 했다.


  치타(Chita, 마음, 이성, 자아)는 두 마리의 힘센 말이 끄는 마차와 같다. 하나는 프라다 (prana, 호흡)이고, 다른 하나는 발사나(Asana. 마차는 힘이 더 센 말 쪽으로 움직이게 된다. 만일 호흡이 우세하다면, 욕망이 제어되고 감각이 억제되어 마음이 안정을 찾는다. 만약 욕망이 우세하다면, 호흡은 절제력을 잃고, 마음은 어지럽고 혼란스러워질 것이다. 그러므로 요기는 호흡의 체계를 완전히 체득하고 호흡의 조절과 통제로 마음을 조절하고 항상 동요되는 마음을 가라앉힌다. 푸라나 야마를 행하는 동안 마음이 들뜨지 않도록 눈을 감는다. 프라다 prana와 마나스 (manas, 마음)이 하나가 될 때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기쁨이 뒤따른다.


  감정의 흥분은 호흡수에 영향을 미친다. 마찬가지로 호흡의 신중한 조절은 감정의 흥분을 제어한다. 요가의 목적은 마음의 조절과 안정에 있으므로 요기는 우선 호흡에 숙달시키는 후라나 야마를 배운다. 이것은 그가 감각 기능을 조절할 수 있게 하고, 프 라 티 아 하 라 pratyahara의 단계에 도달하게 해 준다. 그렇게 되어야만 마음은 정신 통일 dhyana 할 준비가 된다.


  보통 마음은 순수함과 그렇지 않음의 양면을 갖고 있다고 한다. 욕망에서 완전히 벗어나 있을 때 우리는 순수하고, 욕망과 결부되어 있을 때 그렇지 않다고 한다. 마음을 움직이지 않게 하고 게으름과 방심으로부터 자유롭게 되면, 우리는 사마디(samadhi, 삼매)라고 하는 최고의 마음 상태, 즉 아마 나스카 (amanaska, 무심)에 도달한다.


  이 아마 나스카의 상태는 정신이상이나 백치가 아니고 생각과 욕막으로 쿠너 자유로운 의식이 있는 마음의 상태이다. 백치 또는 정신이상자와 무심의 상태에 도달하기 위해 애쓰는 요가와는 엄청난 차이가 있다. 전자는 무분별하나, 후자는 얽매이지 않는 마음 상태를 지향한다. 아마 나스카(무심) 상태는 마음과 호흡이 일체가 되며 이런 자타 모든 마음 상태(사마디)가 되는 것이 요가가 지향하는 것이다.

 


프라다 바요 prana vayu♥
  에너지의 미묘한 형태 중의 하나가 바로 공기 [風]이다. 인간의 신체에 스며 있는 이 생명 에너지는 그의 다양한 기능에 따라 하타 요가 지침서에서 다섯 가지의 주된 범주로 구분되어 있다. 이것들은 비유 (vayu, 바람[風]이라고 불리고, 이 다섯 개의 주요 구분들은 다음과 같다.

(1) 프라다(prana 심장의 영역에서 활동하는 것으로 호흡을 조절한다.

(2) 아팠나 AANA는 하복부 영역에서 그 활동이 이루어지고, 소변과 배설물을 제거하는 기능을 조절한다.

(3) 사마나 samana는 위의 움직임을 촉진해 소화를 원활히 한다.

(4) 우리나 udana는 가슴 부분에서 작용하고, 공기와 음식물의 흡수를 조절한다. 그리고

(5) 조야나 vyana는 전 신체 부위에 널리 작용하고, 음식물과 호흡에서 나오는 에너지를 분배해 준다.

또한 보조적인 역할을 하는 다섯 가지 비유(vayus, 생명의 공기, 바람)가 있다. 이들은, 나가 nags는 트림(분출)으로 복부의 팽만감을 덜어 주는 것이다. 구르마 Kurrma는 이물질이나 너무 밝은 빛에서 눈을 보호하기 위해 눈꺼풀의 운동을 조절하는 것이다. 크르카라 krkara는 재채기나 기침함으로써 이물질이 콧구멍을 통해서 목구멍으로 넘어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것이다. 데 바다 타 devadatta는 하품함으로써 피곤한 육체에 충분한 산소를 제공하는 것이다. 그리고 끝으로 다 남 져야 dhanamhaya는 사람이 죽은 후에도 육체에 남아 있고 때때로 시체를 부풀어 오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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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의 이성이 감가가 기능에 굴복하게 되면 그 자신은 자기 상실의 상태가 된다.

반면에, 호흡조절이 바르게 이루어진다면, 욕망을 외부적인 목표를 따르기보다는 감각 기능들이 내면으로 향하게 되고, 인간은 그것들의 압박에서 벗어나게 된다.

이것이 요가의 다섯 번째 단계 즉 프 라 타 아 하 라 pratyahara라고 부르며, 이 단계에서 모든 감각 기능은 제어된다.


  이 단계에 도달하면, 구도자는 자기 자신을 찾는 경험을 하게 된다. 매력적이지만 치명적인 관능적 욕망의 마력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그러한 욕망을 만들어낸 창조주를 자기 몸속에 새김으로써 욕망에 대한 절연물이 되게 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는 또한 신의 유산인 지식의 등불도 필요하다. 비닐로, 마음이라는 것은 인간에게 있어서 속박의 원인도 될 수 있고 해방의 원인도 될 수 있다. 만약 그것이 욕망의 굴레에 묶여 있다면 속박이 되고, 거기에서 벗어나 있다면 우리는 자유를 맛볼 것이다.

 

  마음이 무엇인가를 갈망하고, 슬퍼하고, 어떤 것에 대해 불쾌해한다면 거기에는 속박이 따른다. 요기는 쾌락보다는 선을 선호한다. 그들의 욕망을 따르는 사람들은 선보다 오히려 쾌락을 추구하여 인생의 가장 중요한 목표를 놓치게 된다. 요기는 현재의 그 상태에서 기쁨을 느낀다. 그는 언제, 어떻게 멈추어야 하는지를 알기에 평온 속에서 사는 것이다. 처음에 그는 쓰디쓴 것을 택하나 중국에는 그것이 꿀처럼 달게 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으므로 수행으로 그 쓴맛을 참고 견디게 된다. 그들의 욕망에 사로잡힌 자들은 처음에는 꿀처럼 달아 보이는 것을 택하나 종국에는 독약처럼 쓰게 된다는 것을 모른다.


  요기는 세속적인 욕망으로 감각을 만족시키는 길은 넓지만, 그것은 결국 파멸로 인도되면, 그 길을 따르는 사람들이 많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요가의 길은 날카로운 면도날처럼 좁고, 밟고 지나가기가 여간 어렵지 않을 뿐에 그 길을 찾을 수 있는 이가 거의 드물다. 요기는 파멸로 이르는 길도, 구원의 길도 마음속에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힌두 철학에 의하면 의식은 세 가지의 다른 특성을 명시하고 있다. 사람에게 있어서, 그이 생명과 의식은 우주 전체와 함께 하나의 힘이며 동일한 프라크리트(prakri, 우주적인 물질 : Sattva, Rajas, Tamas의 세 가지 특성으로 이루어진 물질세계의 본바탕)이다.

 

구나(gynas, 특성, 속성) 들 중에서 우세한 경향에 따라 그 명칭이 달라진다. 이들 구나(특성 혹은 속성) 들은 다음과 같다.
  (1) 삼성 직무적성검사 바 (Sattva, 밝고 순수하고 선한 특성)은 명료함과 정신적 평정에 이르게 한다.
  (2) 로저스 (Rahas, 이동성과 활동적인 특성)은 개인을 적극적이고 활기차고 긴장하고, 의지적으로 한다.
  (3) 토마스 (Tamas, 어둡고 방해가 되는 특성)은 라자스탄의 작용과 사트마가 나타나는 것을 저지하고 반대로 작용하게 한다.

 

 


  타 화성 Tamas는 미혹, 불분명, 비활동적, 무지의 특성을 지니고 있다. 이런 다마스의 성질이 우세한 사람은 생기고 없고, 무감각한 상태에 빠져 있다. 사트마가 신성에 이르는 길이라 하면 토마스는 악성에 이르는 길이고, 양자 사이에 라자르가 있다. 각 개인이 가지는 신념, 취하는 음식, 행하는 헌신 행위들, 겪은 내핍 생활, 부여받은 재능은 그에 내재하는 삼성 직무적성검사 바, 로저스, 토마스 중 우세한 요인에 의해 변한다.


  신성한 쪽을 향하는 경향을 타고난 사람은 두려움이 없고 순수하다. 그는 관용다우며 자기 통제가 되는 사람이다. 그는 자아에 대한 탐구를 추구하며 비폭력적이고, 신심이 깊고, 성내지 않는다. 그는 노력에 대한 결과를 바라지 않고, 일 자체를 위해 일한다. 그는 갈망이 없으므로 그 누구에게도 악의를 품지 않고 모든 이웃을 향해 열린 자비로움으로 마음의 평정을 갖는다. 그는 온화하고 겸손하며 성실하다. 그리고 의식이 깨어 있으며, 관대하고, 결연하고, 불신과 자만으로부터 해방된 사람이다.

 

 악한 경향을 타고난 사람은 잘 속이고, 거만하며, 자만에 빠져 있다. 그는 노여움, 잔인함, 무지로 가득 차 있다. 그런 사람들에게는 순수함, 정의로움, 진실을 찾아볼 수 없다. 그들은 한없는 욕망과 욕구를 채우려고만 한다. 무수한 욕망으로 어지러워진 상태에서, 망상의 늪에 빠지고, 감각적 쾌락의 탐닉은 그를 지옥에 이르게 한다.

 

 라도 구냐(rah-guan 성질이 우세한 사람은 갈망이 강하고 애정도 깊은 사람이다. 그는 정열적이며 탐욕적이어서 다른 사람을 해칠 수도 있다. 욕정, 증오, 시기와 속임으로 가득하기 때문에, 그의 욕망은 그칠 줄을 모른다. 그는 야심이 있고, 성취욕이 강할 뿐 아니라, 불안정하고, 변덕이 심하며, 쉽게 음이 산란해진다. 그는 친구의 도움을 구하기도 하고 가족에 대한 자부심도 있다. 그는 불쾌한 일에는 몸을 움츠리고 유쾌한 것에만 매달린다. 그의 말에는 정이 없으며, 식탐이 많다.


 각각의 다른 구나 guan이 우세하게 지배하는 사람들의 마음 작용은 '탐내지 말라'와 같은 보편적인 계율에 대한 그들 나름대로 접근 방법에 따라 달리 설명될 것이다.


  탈모 구나 TMAO-gum이 우세한 사람은 이렇게 해석할 것이다. "다른 사람들은 내가 어떻게 얻었든 간에 내 것은 탐하지 마라. 만약 내 것을 탐한다면 그들을 파멸시킬 것이다."


  라도 구나 raj-guan이 우세한 사람의 성격은 그 계율을 "남들이 나의 것을 탐하지 않는 한 나도 남의 것을 탐하지 않는다."라고 해석하는 이기적인 사람이다. 그는 문자 그대로 수단으로써의 법을 지킬 것이지만, 원리의 문제에 입각한 법의 진정한 정신은 따르지 않는 셈이다.


  사트비카sattvika 기질을 갖춘 사람은 수단으로써가 아니라 영원한 가치로서 원리를 중시한 법의 글자 자체의 뜻과 가르침의 정신 둘 다 지킬 것이다. 그는 정의 그 자체를 위해서 정의로운 것이지 정직하도록 강제하는 법의 처벌 때문이 아니다.


  요기 또한 인간이므로 상술한 세 가지 구나에 영향을 받는다. 자기가 추구하는 대상물 및 자기 자신에 대한 '끊임없는 수행(abhyasa)'을 통해서 어떤 사상, 말, 행위들이 토마스 혹은 라자르에 어떻게 영향받는지를 배우는 것이다. 끊임없는 노력으로 타 화성 Tamas에 의해 고무된 그러한 생각들을 제거해 버리고 그는 사 트 비 카 sattvika의 마음을 얻기 위해서 노력한다. 삼성 직무적성검사 바 구나 sattva-guan만이 남게 되었을 때, 인간의 영혼은 드디어 궁극적인 목적을 향해 크게 다가서게 되는 것이다.


  중력처럼 구나들 역시 끌어당기는 힘이 있다. 우주에서 무중력 상태를 경험하기 위해 집중적인 연구와 엄격한 훈련이 필요하듯이 구도자는 구나 guan의 끌어당김으로부터 자유로워졌을 때 신성과의 합일을 경험하기 위해서는 요가를 통한 훈련과 자기 성찰의 구도적 수행이 필요하다.


  일단 구도자가 신성 또는 창조의 완벽함을 경험하게 되면 감각 기능의 대상들에 대한 갈망 (갈아)는 사라지고 그 후부터는 그것들을 '욕망 없는 냉정한 마음 (vairagya)' 이로 바라보게 된다. 그는 더위와 추위, 고통과 기쁨, 명예와 수치, 덕(德)과 부덕(不德)에 있어서 동요가 없게 된다. 승리와 불행 이 두 가지를 평정한 마음으로 대한다.


  그는 이 두 개의 상반된 것들에서 자기 자신을 해방했다. 그는 이제 구나 들의 끌어당김을 넘어서서 구나 티 타(gunatita 된 것이다. 그제야 그는 생사와 고통과 비애의 틀에서 해방되어 불멸한 생명이 된다. 대우주 정신(혼)과 일체가 됨으로써 신의 완성함을 경험했기 때문에 이것이 내 속에 있다는 것을 주장하지 않는다. 그 어떤 것도 겸허하게 받아들이는 그런 사람은 모든 것을 완전에 이르는 길로 인도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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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사나 (Asana, 자세형법, 坐法)

  요가의 세 번째 단계는 아사나, 즉 요가 자세이다. 

아사나는 안정감, 건강, 수족을 가볍게 해 준다. 균형 있고, 기분 좋은 자세는 정신적인 평정을 가져다주고, 마음의 변덕스러움을 자제하게 해 준다. 아사나는 단순한 체조가 아니나. 그것은 요가 자세이다. 다른 운동은 넓은 샅과 값비싼 운동 기구가 필요하지만, 아사나를 수행하기 위해선 깨끗한 공기가 통풍되는 장소와 담요 한 장 그리고 강한 결심이 필요하다.

  아사나는 혼자 힘으로 할 수 있으며 할 수 있으며, 팔과 다리를 써서 필요한 무게를 지탱하고 균형을 잡는다. 아사나를 수행함으로써, 민첩성, 균형감, 인내력, 왕성한 활동력을 계발시킨다. 아사나는 육체의 모든 근육, 신경, 분비샘(腺)을 운동시키기 위해서 수 세기 동안 발전되어 왔다. 아사나는 근육이 굳지 않고 강하고 탄력 잇는 훌륭한 체격을 보장해 주고 병으로부터 육체를 보호한다. 또한 아사나는 피로를 없애 주고 신경을 진정시킨다. 그러나 아사나의 실질적인 중요성은 몸의 훈련을 통해서 마음이 닦아지는 데 있다.

 

  많은 배우, 곡예사들, 육상 선수들, 무용수들, 음악가들, 운동가들은 뛰어난 신체 조건을 가지고 있고, 육체를 조절하는 데는 익숙하지만, 자아를 다루는 능력은 부족하다. 그런 까닭에 그들 자신과의 부조화를 이루며, 그들 중 균형 잡힌 인경을 가진 사람을 만나기란 쉽지 않다. 그들은 종종 육체를 무엇보다도 중시한다. 요기는 그의 육체를 경시하지 않으며, 단순히 완벽한 육체만이 아니라 감각, 마음, 지성과 정신의 완벽함을 함께 추구한다. 요기는 아사나의 수행으로 육체를 정복하여, 정신 수행에 적합한 수단이 되도록 한다. 그는 육체는 정신을 위해 필요한 도구임을 안다. 육체가 없는 정신은 날개를 잃어버린 새와 같다.


  요기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데, 우리의 몸뚱이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여행하면서 통행료는 지불하듯 스러져 가는 것임을 알기 때문이다. 우리의 몸은 쉼 없이 변해 가는 유년기, 청년기, 노년기에 따라 그때그때 영향을 받는다는 것을 알고 있다. 육신의 나고 죽음은 자연적 현상이지만 영혼은 나고 죽음에 상관없다. 마치 우리가 다 떨어진 겉옷을 벗어던지고 새 옷을 입듯, 영혼은 늙고 병든 육체를 버리고 새로운 육체를 택하는 것이다.

 

  요기는 '절대 신성'이 그에게 준 이 육체가 개인의 쾌락을 위해서만이 아니라 살아 있는 매 순간순간 이웃들에게 베풀어 주기 위해 있는 것임을 믿는다. 그는 자기의 육체를 자기의 것이라고 여기지 않는다. 그는 자신에게 육체를 준 '절대 신성'이 어느 날 그의 몸을 다시 거둘 사실을 알고 있다.


  아사나를 행함으로써 구도자는 먼저 건강하게 되는데, 이는 단순한 건강이라는 의미만은 아니다. 단순히 돈으로 살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순전히 힘든 노력으로만 얻어지는 가치 있는 것이다. 육체와 마음과 영혼의 완전한 평형 상태이다. 몸도 마음도 의식하지 않아도 좋은 자연의 상태를 건강이라 한다. 요기는 아사나를 행함으로써 육체적 질병과 정신적 혼란 상태에서 벗어난다. 그는 이 세상에 대해 봉사하는 것에 의해 그의 행위와 그 행위의 결과를 '절대 신성'에 돌린다.


  요기는 그의 삶과 모든 활동이 사람의 형태를 빌려서 이루어 내는 본래 신의 행위의 역할임을 깨닫는다. 그의 맥박과 호흡의 리듬 속에서 계절의 흐름과 우주적 삶의 고동을 알게 된다. 그의 육체는 신성이 머무르고 속에 잊고 속에 잊고 속에 잊고 있는 사원이다. 그는 육체가 필요로 하는 것을 무시하고 부정하는 것과 육체를 신성하지 않은 것으로 생각하는 것은 육체가 우주적인 생명의 일부분임을 망각하고 부정하는 것이라고 느낀다. 육체의 요구는 그 속에 내재하고 있는 신성의 요구이다. 요기는 신을 찾기 위해 하늘을 쳐다보지 않는데, 그는 신은 안타라스만 (Antaratma, 내적 자아)로 알려진, 자신 속에 있음을 알기 때문이다. 그는 신의 왕국이 자신을 감싸고 있음을 느끼고 하늘이 자기 자신 속에 있음을 알고 있다.


  육체가 끝나고 마음이 시작하는 곳은 어디인가? 마음이 끝나고 영혼이 시작하는 곳은 어디인가? 그것들은 내적으로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고 똑같이 신성한 의식으로 전체에 퍼져 있는 다른 양상이므로 서로 나누어질 수 없다. 요기는 결코 몸과 마음으로 소홀히 하지 않고 둘 다 소중하게 여긴다.


  그에게 있어서 몸은 그의 정신적 해탈에 방해가 되는 것도, 그것을 저하하는 요인도 아닐뿐더러, 오히려 해탈에 이르게 하는 수단이다. 그는 '절대 신성'을 성김에 있어 헌신적으로 봉사하기 위해서 천둥 번개만큼 강하고, 건강하고, 고통이 없는 몸을 갖고자 한다.


  「문다. 키 우파니샤드 mundaiopanisad」에서 지적하고 있듯이, 강직함이 없고, 무분별하고, 목표가 없는 사람은 자아를 이룰 수 없다. 굽지 않는 토끼는 물속에서 풀어지듯이 육체도 곧 쇠퇴한다. 그런 연유로, 육체를 정화하고 강하게 하기 위해서 요가적 수행의 불꽃으로 단단히 그것을 구워야 할 것이다.

  아사나의 이름들은 각각 의미를 내포하고, 논리적 진화의 추이를 보여주고 있다. 어떤 것들은 나무 VRSA와 연꽃 pad ma 같은 식물의 이름을 본떠서 이름 지어졌고, 어떤 것은 메뚜기 salabha와 전갈 vischika 같은 곤충의 이름을 따서 지었다. 또, 물고기 mats ya, 거북 kurma, 개구리 (bheka 또는 manduka), 악어 NARA와 같은 수생동물과 양서류를 본떠서 이름 지어진 것도 있다. 또 수탉 kukkuta, 왜가리 Baka, 공작 Mayra, 백조 ha SMA, 사자 sima와 같은 네발짐승을 따서 이름 지은 것도 있다. 뱀 bhujanga과 같은 기어 다니는 동물들도 잊지 않았고 인간의 태아 상태도 간과하지 않았다.


  비라 바드라 Virabhadra와 같은 전설적인 영웅과 바람 신의 아들 하누만 Hanuman의 이름을 딴 아사나도 있다. 바라도 바자 Visvamitra, 카피라 Kaila, 바리스타 Vasistha와 버스 바 미트라 Visa Mitra 같은 현인들은 그들의 이름을 딴 아사나를 통해서 기억된다. 일부 아사나는 힌두 신전의 신의 이름에서 비롯된 것도 있고, 어떤 것들은 아바타 라디오스타 Avatars 즉 화신의 모습을 떠올리게도 한다.


  아사나를 행하는 동안 요기의 육체는 다양한 생물체의 모습을 닮게 된다. 그의 마음은 어떤 생물체도 무시하지 않도록 하는데, 그 이유는 모든 생물체- 가장 열등한 곤충으로부터 가장 완전한 현인까지 모든 피조물의 형상을 취하는 우주정신(대우주의 氣)을 다 같이 호흡하고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는 최상의 형태는 '무형'이라는 것을 앎으로써, 그는 보편성 속의 통일성을 발견한다. 진정한 아사나는 '브라만'을 생각하는 마음이 자연스럽게 또 끊임없이 구도자의 마음속에 흐르는 것이다.


  얻고 잃음, 이기고 짐, 명예와 수치, 육체와 정신, 마음과 영혼과 같은 이원성은 아사나 같은 사람들의 완전한 체득을 통해서 모두 사라져 버리고, 구도자는 요가의 네 번째 단계인 광장이야말로 나아가게 된다. 프라다야 마의 수행에서 활발하게 이용되는 신체의 유일한 부분들은 콧구멍, 코의 통로, 점막, 기관, 폐, 횡격막이다. 이것들만 생명의 숨결인 프라다 prana의 완벽한 영향을 느낀다.


  그러므로 생명 그 자체를 다루고 있으므로 푸라나 야마를 서둘러서 완전히 체득하려 해서는 안 된다. 이것의 올바르지 못한 수행은 호흡기의 질환을 일으키고 신경 조직을 파괴한다. 요가 수행자는 올바른 후라나 야마 수행에 의해 대부분의 질병에서 벗어날 수 있다. 그러나 절대로 혼자서 푸라나 야마를 익히려고 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제자의 육체적 특성을 잘 파악한 영적 스승의 개별 지도를 받는 것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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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단계 니 야마 (Niyama, 勌戒, 예행에 의한 자기 정화)

야마(금계)의 적용은 보편적이지만, 네 야마는 개인적인 수행에 적용하는 행동 규율이다. 파탄잘리가 말하는 다섯 가지 네 야마는, (1) 사우나(Sacha, 신체의 청결) (2) 산 토사(samtisa, 만족) (3) 타파스 (tapas, 고행) (4) 속도야 (svadhyaya, 성전을 통한 자아 교육) (5) 이수 바라 슬이라니 다나 (Is vara pranidhana.

 

① 사우 차 Sacha: 신체의 청결은 행복의 필수 요건이다. 외관상으로 목욕과 같은 좋은 습관이 신체를 깨끗하게 하지만, 아사나와 프라다 야마는 내면적인 청결을 가져다준다. 아사나의 수행은 전 육체를 정상적으로 조절해 주고 지나친 방임으로 야기된 독소나 불순물을 제거한다. 푸라나 야마는 폐를 깨끗이 하고, 피에 산소를 공급하며, 신경을 정화한다. 그러나 육체의 물리적 정화조 다 더 중요한 것은 증오, 격정, 분노, 욕망, 탐욕, 기만, 자만과 같은 감정으로부터 마음을 정화하는 것이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맑지 않은 생각 속의 지성 buddhi를 정화하는 것이다. 마음속의 더러움은 박이 불꽃으로 태워 버려야 한다. 이런 내면 정화에 의해서 빛과 기쁨을 준다. 그것은 자비심 saumanasya을 가져다주고, 정신적인 고통, 우울, 비해 와 절망 daurmanasya을 몰아내 준다. 사람이 자비로울 때, 그는 단순히 다른 이들이 갖고 있는 잘못만을 끄집어내는 것이 아니고 그가 갖고 있는 덕(德)까지도 볼 수 있다. 타인의 덕성(德性)을 존경하는 마음은 그 자신을 존경할 수 있게 만들고 또 자신의 슬픔과 역경에 대처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마음이 맑으면 '한곳에 집중 (ekagra)' 하기 쉽다. 이 집중으로 사람이 '감각 기능을 조절 (indri ya-jay)' 하게 된다. 귀리고 나면 사람은 자기 육체라고 하는 사원에 들어갈 준비가 되고, 마음의 거울로 자신의 참모습을 본다. 몸, 생각, 말의 청정 외에 깨끗한 음식 역시 필수적인 것이다. 음식을 준비함에 있어서의 청결함 외에도 그것을 취하는 수단의 청결함 역시 필수적인 것이다.
  평생을 통해 우리를 지탱해 주면서 동시에 소모되는 물질, 그 음식물은 단순한 식물(食物) 이라기보다는 브라만, 즉 우주 순환 원리 차원으로 보아야 한다. 따라서 한 입 한 입 먹는 것이 '절대 신성'을 섬기는 힘을 얻을 수 있다는 생각으로 먹어야 한다. 그래야 음식이 청결해진다. 채식주의자냐 아니냐는 철저히 개인적인 문제인데, 개개인은 자기가 태어나고 자란 곳의 전통과 습관에 영향을 받는다. 그러나 시간이 지남에 따라 요가 수행자는 오롯한 집중력과 영적 계발을 위해서 반드시 채식주의를 채택해야 한다.
  음식은 건강, 체력, 에너지와 삶을 증진할 목적으로 취해져야 한다. 그것은 담백하고, 영양가가 많고, 신선하고, 자극성이 없어야 한다. 시고, 쓰고, 짜고, 맵고, 타고, 상하고, 맛이 없고, 소화가 잘 안 되고, 청경 하지 않은 음식은 피한다. 우리가 먹는 먹거리와 섭취 방식이 그 사람의 인성을 형성한다.
  일반적으로 사람은 살기 위해 먹는다기보다는 먹기 위해 살고, 배고프지 않은 상태에서도 먹을 수 있는 유일한 존재이다. 만약 우리가 혀의 구미에 따라먹는다면, 과식으로 우리의 소화기관은 이상이 생길 것이고 그로 인해 고통받을 것이다. 요기는 조화를 신봉하고, 그래서 그는 몸을 유지할 목적으로만 먹는다. 또 너무 많아도, 너무 적게도 먹지 않는다. 그는 자기 육체를 영혼의 쉼터로 여기고 자신이 태만해지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인다.
  음식 외에도 장소 역시 수행을 위해선 중요한 사항이다. 집에서 멀리 떨어진 외진 곳이나 숲, 혼잡한 대도시, 즉 소란한 곳에서 수행은 쉽지 않다. 우리는 먹거리를 쉽게 구할 수 있고, 곤충이 없고, 폭풍우로부터 보호받을 수 있는 쾌적한 환경을 선택해야 한다. 호수나 강의 둑 같은 곳이나 해변이 이상적인 곳이다. 그러나 그런 조용하고 이상적인 장소는 현대에서는 찾아보기 힘들다. 하지만 적어도 자기 방 한 귀퉁이에 수행 장소를 정해 깨끗하고 공기가 잘 통하고, 건조하고, 해충이 없게 한다.

 

② 산 토사 Santos: 산 토사 즉 만족(충족감)은 계발돼야 한다. 만족스러움을 모르는 사람은 집중할 수 없다. 요기는 어떤 것도 부족하다고 생각하지 않음에 자연히 만족하게 된다. 만족은 요기에 더할 수 없는 기쁨을 준다. 만족을 느끼는 사람은 신의 사랑을 알고, 그의 의무를 다했기 때문에 완전하다. 그리고 진실을 알고 기쁨을 아는 자는 축복받은 자이다.
  만족(충족감)과 평온은 마음의 상태인데 인종, 신조, 부와 학식에 따라 사람마다 다 차이가 있다. 그 차이는 부조화를 낳고, 사람을 괴롭히고, 혼란스럽게 만드는, 의식적인 혹은 무의식적인 갈등을 야기시킨다. 그러면 마음은 '오롯한 집중력(ekagra)'을 잃게 되고 마음의 평화마저 빼앗긴다. 영혼의 불꽃이 욕망의 바람으로 흔들리지 않을 때 평온과 만족이 있다. 구도자는 죽은 자의 텅 빈 평온이 아니라 신에 의지하여 확고히 형성된 이성을 가진 자의 평온을 추구하는 것이다.
 

③ 타파스 Tapas: 불꽃을 일으키다, 타다, 빛나다, 고통받다, 연소한 다를 의미하는 어근 'tap'에서 유래된 말이다. 그러므로 그것은 어떤 여건 속에서도 인생의 명확한 목표를 성취하기 위한 타는 듯한 열정적인 노력을 의미한다. 그것은 정화, 자기 제어, 고행의 의미를 내포한다. 인격 형성을 위한 이 모든 것을 타파스의 수행으로 간주할 수 있다.
 타파스는 신성과의 일체라는 궁극적인 목표를 이루고 이 목표를 향해가는 데 방해가 되는 모든 욕망을 태워 버리려는 의식적 노력이다. 가치 있는 목표는 삶을 계몽시키고, 정화, 신성하게 한다. 그런 목표가 없다면, 행위와 기도는 아무런 가치가 없다. 타파스가 없는 삶은 사랑이 없는 가슴과 같다. 타파스가 없다면, 마음은 '절대 신성'에 도달할 수 없다.
 타파스는 세 가지 유형으로 나눌 수 있다. 그것은 육체 Kayika, 언어 vachika, 마음 mana sika와 관련된 것이다. 금욕 brahmacharua과 비폭력 ahimsa는 육체의 타파스이다. 공격성이 없는 말을 하고, 신성을 찬미하고, 자기 자신에 대한 결과와 관계없이 진실을 말하고, 남을 헐뜯지 않는 것이 언어의 타파스이다. 기쁜 일에도, 슬픈 일에도 마음의 평정을 이루고 자신을 조절할 수도 있으며, 고요한 마음자리를 지닐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마음의 타파스이다. 이기적인 동기나 보상을 바라지 않고, 들풀 한 잎이라도 신의 뜻 없이는 마음대로 할 수 없다는 굳은 신심으로 행동하는 것이 타파스이다. 요기는 타파스를 통해 강인한 육체와 마음 그리고 인성을 향상한다. 그는 용기와 지혜, 성실, 강직성과 순박함을 얻게 된다.

 

④ 스바 그야 (Svadhyaya, 성전을 통한 자아 교육)
스바 SA는 자아를 의미하고, 아들 야야 adhyaya는 교육이나 연구를 의미한다. 교육은 사람 속에 있는 최상의 것을 끌어내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보다 야야는 자아의 교육인 것이다.
  그보다 야야는 강사가 무지한 청중 앞에서 자기 지식을 늘어놓는 강의를 듣는 것과 같은 단순한 교육이 아니다. 그보다 야야는 연사와 청중이 한마음이 되고, 서로 사랑과 존중을 가지게 된다. 설교는 있을 수 없고, 가슴과 가슴이 대화를 나누게 되는 것이다. 그 바 등 야 야로부터 일어나는 고상한 생각은 그의 혈관을 타고 흘러 그의 삶과 존재의 한 부분을 이룬다.
  그 바 등 야 야를 수행하는 사람은 삶이라는 자신의 책을 읽음과 동시에 그 책을 만들고 수정한다. 인생관이 바뀌게 되고, 그는 모든 만물이 향락 boga보다는 오히려 박이(신심 또는 헌신) 을을 위해 존재함을 깨닫게 시작한다. 즉, 만물은 신성하고, 그 자신 안에 신성이 있고, 그를 움직이는 에너지는 우주를 움직이는 것과 똑같은 에너지라는 것을 깨닫는다.
  비노바 바베 (Sri Vinoba Have, 부담 boodan운동의 지도자)에 의하면, 그보다 야야는 수많은 주제나 행위의 기초 또는 근간이 되는 주된 주제를 탐구하는 것이다.
  인생을 건강하고 행복하고 평화롭게 만들기 위해서, 맑은 장소에서 신성한 학문을 정규적으로 연구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세계의 성전을 공부하는 것은 구도자에게 집중력을 주고, 인생의 험난한 문제들을 헤쳐 나갈 수 있게 해 준다. 그것은 무지를 끝내고 지식을 가져다준다. 무지는 시작은 없지만 끝은 있다. 지식은 시작은 있지만 끝은 없다. 

  그 바 등 야 야 구도자는 그의 영혼 실체를 알게 되고, 신성과의 영적 교감을 얻게 된다. 세계의 성전은 모든 이가 읽을 수 있다. 이는 특별한 믿음을 가진 사람만을 위한 것은 아니다. 마치 꿀벌이 여러 가지 꽃에서 꿀을 모으는 것처럼, 구도자는 각각 다른 믿음 속에 있는 것을 흡수하여 자신의 신심을 더욱 굳건히 안다. 
  언어학은 언어 그 자체가 아니라 언어의 체계적 학문으로, 그것을 공부하는 것은 그 언어를 더 잘 이해하고 체득할 수 있게 한다. 마찬가지로, 요가 자체가 종교가 아니고 '종교적 수행의 한 형태'로 그것의 연구를 통해 구도자는 자신의 신심을 더 잘 이해하게 된다.


⑤ 이수 바라 프라이 다나 [Is vara pranidhana, 자재임(절대 시성)에 대한 헌신(신심)]
자신의 행위와 의지를 절대 신성에 바치는 신심이 이수 바라 파랗습니다. 나이다. 신에 대한 믿음이 있는 이는 절망하지 않고, 스스로를 밝힐 수 있다. 만물이 절대 신서에 속해 있음을 알고 있는 사람은 자만심으로 득의양양하지 않고, 권력에 휩싸이지 않는다. 그는 자신의 목적을 위해서 머리를 숙이지 않으며 오직 신심으로 머리를 숙인다.
  박이 물결이 마음의 터빈을 통해서 흐르게 될 때, 그 결과 정신적 힘과 영혼의 밝힘을 가져오는 것이다. 박 티 bhakti 없는 단순한 육체적 힘은 치명적이고, 인격의 힘은 없는 숭배는 진정제와 같은 것이다. 쾌락의 탐닉은 힘과 영광을 파괴한다. 그들이 쾌락 추구에 따른 감각 기능의 만족에서 쾌락에 매달리게 되고 또 되풀이하고 싶은 욕심이 일어난다.
  만약 감각 기능을 만족시키지 못하면 고뇌 Soka 가 있을 따름이다. 그것들은 지식과 자제로써 억제되어야 한다. 그러나 마음을 억제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우리는 최선을 다하고서도 성취하지 못했을 때 비로소 모든 힘의 원천인 ' 절대 신성'에 도움을 구한다. 이때가 바로 박치가 우러나는 단계이다. 이 우러나는 단계에서 마음, 지성, 의지는 '절대 신성'에 굴복하고, 구도자는 기도한다. '진성, 나를 위하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나니 당신의 뜻대로 이루어지게 하소서.'
  다른 이들은 자신의 욕망을 만족시키거나 이루기 위해서 기도한다. 헌신적인 마음의 상태나 진정한 사랑의 마음에는 '나'와 '나의 것'이라는 생각이 자리 잡을 곳이 없다. '나'라든가 '나의 것'이라는 관명이 사라질 때 개인의 영혼은 완전한 성숙 단계에 이른다.
 개인의 욕구 충족에 대한 욕망이 사라질 때, 마음은 '절대 신성'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할 것이다. 개인의 욕구 충족에 대한 생각으로 채워진 마음일 때는 욕망의 대상에 그의 마음이 끌려다니는 위험성이 있다. 욕망을 비우지 않는 마음으로 박치를 실천하려는 시도는 젖은 나무로 불을 피우려고 하는 것과 같다. 그것은 연기만을 가득 피워 불을 지피려는 이와 그 주변 사람들이 눈물을 쏟게 한다. 욕망이 있는 마음은 불이 붙어 작렬할 수 없을뿐더러 심지어 지식이라는 불로도 빛이나 온기를 만들 수 없다.

 
 '절대 신성'은 어둠을 밝히는 태양과 같다. 달은 태양과 마주하고 있을 때 만월이 된다. 개인의 영혼은 '절대 신성'과 마주했을 때 비로소 완전함 purnata을 경험한다. 만약 지구의 그림자가 보름달과 태양 사이에 온다면, 그것이 바로 일식이다. 내가 경험한 완전함에 '나'라든가 '나의 것'이라는 생각이 그늘을 지우면 마음의 평온을 얻고자 애쓴 구도자의 모든 노력이 헛되어진다. 행동은 말보다 더 잘 그의 인성을 비춰 주고 있다. 요기는 '절대 신성'에 사진의 모든 행동을 헌신하는 기술을 배웠고, 그 행동들이 그 속에서 신성을 비춰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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